라이프로그


엄마의 사전



결혼하고 문득 지난 날들이 떠올라 엄마에게 미안해진 적이 있다.
그것은 반찬투정을 하거나 엄마랑 대판 싸웠던 일들이 아니라, 그까짓 전기세 얼마나 한다고 잔소리냐며 짜증냈던 일이다.
어릴 때 시장에 가면, 엄마는 시장의 끝과 끝을 한 바퀴 돈 다음 몇 번씩이나 가격을 비교 한 후에야 지갑을 열었다.
마트에서도 엄마는 여전히 기껏해야 몇 백원 차이나는 우유를 바로 카트에 담지 못했다.
그렇게 모아 피아노를 사주고, 거실에 컴퓨터를 들여놓았다.
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해도, 어떻게 자신이 치지도 못하고, 써보지도 못 한 것들을 안입고 안먹고 안써서 모은 돈으로 살 수 있었을까.

나이가 들면서, 엄마를 여자로 보고, 그 여자의 일생을 생각하게 된다.
아무리 옛날에는 다 어려웠다지만 왜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찢어지게 가난한 그 집에서 태어났을까.
그 시대는 다들 그랬다지만, 왜 우리 엄마도 야간학교에 다니며 이른 아침 공장으로 들어가야했을까.
왜 엄마의 인생엔 조그마한 예외도 반전도 없었던 것일까.

엄마는 구멍가게 집 다섯번 째 자식이었고, 뒤로 두 명의 남동생이 오 년 간격으로 태어났다.
엄마는 스피커에 귀를 갖다대고 이종환의 목소리를 들으며 종환오빠에게 편지를 보냈다.
종환오빠는 엄마의 편지를 몇 번 읽어주었고, 그것은 소녀가 작가를 꿈꾸게 하고 때론 교단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했다.
그러나 그것은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오히려 절대 이뤄질 수 없는 꿈이므로, 빨리 깨는 것이 좋다는 것을 엄마가 제일 잘 알았다.
공장으로 들어갔고, 월급을 꼬박모아 두 남동생을 대학에 보냈다.
자신이 할 일은 이제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.
엄마는 곧바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하고 나온 남자와 선을 보고 결혼해서 구멍가게를 떠났다.
그 때 엄마의 나이가 스물넷이었다.

나무의 나이테가 한 줄씩 늘어나듯, 사람도 살면서 자기만의 사전에 단어를 하나하나 늘려가는 거라고 생각한다.
나에게서 처음 트렁크란 단어를 들었을 때 엄마는 당황했다.
지금 딸이 말하는 건 차 트렁크가 아닐텐데, 하는 얼굴이었다.
나는 목에 사탕이 걸린 것 같았지만 태연하게 내가 여행갈 때 끌고갔던 거, 라며 손으로 트렁크 끄는 흉내를 내며 말해줬다.
엄마의 사전엔 트렁크가 없었다.
여권도 공항도 없었다.
내 자식이 끌던 트렁크와, 내 자식이 만든다던 여권,  자식이 드나들던 공항이 아니라,
엄마 자신의 것이 없었다.

엄마의 사전에 그동안은 없었던, 혹은 내 것에는 없는 많은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다.
알고보니 반전도 예외도 많은 엄마의 사전을.
그 사전에 남편과 자식 칸은 그만 채워넣고, 춤, 대학, 글, 유럽이라는 단어가 넣어졌으면 좋겠다.
그리고 거기에는 꼭 자유도 넣었으면 좋겠다.
 

덧글

  • 2014/12/29 14:09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4/12/29 21:49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  • 2014/12/29 14:18 #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4/12/29 21:58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  • 2015/01/22 11:25 # 삭제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허니와 클로버 2015/01/23 23:47 #

    결혼을 하니 엄마가 여자였다는걸 실감하는거 같아요.
    엄마의 일생 중 여자로 살았던 순간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. 저도 그래요, 엄마 생각을 항상하고 애틋한데 만나면 마음과 달리 철딱서니 없는 딸로 돌아와요.
    엄마의 시간이 좀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어요.